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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홍상기
김지수 기자  |  jeesoo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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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2  17: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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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홍상기

그는  누구인가?

 

홍상기


따뜻한 감성과 아름다운 음색으로 자기만의 색깔 있는 연주로 호평 받고 있는 기타리스트 홍상기 는 국내에서 손영성, 오승국, 배성학 선생을 사사하며 다양한 연주활동을 하던 중, 1992년 스페인 마드리드로 유학, Arturo Soria음악원에서 음악이론, 시창, 청음, 화성분석 등을 수료하였고 스페인 마드리드 시립음악원 졸업 후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Jose Luis Rodrigo와 Demetrio Ballesteros를 사사하였다.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교 초청연주,

스페인 "Valladolid" 기타 페스티발, 스페인 Guadalajara시 주최 "Semana de la guitarra"(기타를 위한 주간)등, 다양한 음악회에 초청되었으며. 1997년에는 마드리드시 주최 "젊은 음악가 시리즈" 기타부문과 실내악의 밤 출연을 비롯해 졸업 후에도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졸업생을 위한 연주회에 출연하였고  동음악원 주최의 “기타 협주곡의 밤”과 스페인 교민회 주최 연주회 (Principe de Asturias홀)등 많은 연주회에 초청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왕립음악원 재학중에도 다양한 페스티발 등을 통하여 현재 활동 중인 세계적인 연주가인 Eduardo Issac. Alex Garrobe, Hugo Geller, Carles Trepat,  Miguel Angel Girolet, Miguel Trepaga, Gerardo Ariaga (바로크 기타 분석)등과의 마스터 클래 스와 교류를 통해 그의 음악세계를 넓혀왔다.

 

2003년 왕립음악원 졸업 후 11월 최고 교수 자격증을 획득하고 귀국한후 2004년 5월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귀국독주회가 많은 관객에게 호평을 받으며  이를 계기로 기타매니아 주최로 Buxtehude 음반을 출반하기도 하였으며 2008년에는 대성당 "La Catedral"음반을 녹음 출반하였다..

 

또한 뉴질랜드 스트링 콰르텟, LAPA 스트링 콰르텟, 루마니아 야쉬 필하모니,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루마니아 국립 라디오 챔버 오케스트라.GIGF 오케스트라등과의 협연을 통해 다양하고 폭넓은 그의 음악세계를 보여주었으며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21세기악회 주최, 자유 편성 실내악부문 초청.고양 국제 기타페스티발 초청연주등 수십회의 자선음악회와 기획연주회에 초청받았다.

 

솔로뿐만이 아닌 앙상블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브라만 기타트리오를 결성, 금호아트홀에서 연주 하였으며 부산 기타 페스티발과 로스아미고스 초청연주, 러시아 푸쉬킨극장의 초청으로 러시아 하바로브스크, 나호드까, 블라디보스톡에서 연주하였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Ana Vidovic의 내한연주회에 듀오 파트너로 서울과 대전, 부산에서 함께 연주하였다. 이외에 서울시청주관 창의특강.용인시청주관 용인학 강의등 연주외에도 다양한 강연활동으로 기타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있다..

 

기타리스트 홍상기는 현재 서울스트링즈 음악감독.서울시 인재 개발원 초빙교수.추계예술대학교.한국 콘서바토리.기타음악원 "라 기따라" 에서 후학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홍상기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인생을 살아 오면서 수많은 만남들이 있었지만 아주 특별한 세번의 만남이 있었다고..

그의 특별한 만남을 들어본다.

 

만남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수많은 만남들중에 특별한 몇번의 만남이있다.
그중 첫번째는 기타와의 만남이다.


15살이란 사실 악기를 시작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에 기타를 처음접하고 조금씩 기타를 알아가면서 나는 그악기가 가진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수 없었다.


제가 생각하는 기타는 근본적으로 슬픈악기입니다.왜냐면 만들어 질때부터 길지않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태어나거든요.기타는 제작과정 그러니까 설계부터 울림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현을 고정시키는 브릿지를 기타의 앞판 뒷부분에  직접 고정시키는데 이부분이 기타에 가장많은 압력을 받게되면서 앞판이 손상되기때문입니다.


기타를 배우고 알아가면서 고등학생이되고 저는 고전기타반에 들어가서 좀더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시작하는데 이때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는데 바로 대중과의 만남입니다.


그냥 평범한 고교 동호회였지만 상당히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해서 많은 무대경험을 할수있었고 여기서 대중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법을 배우고 알아갈수있었다.


이렇게 계속 기타에 빠져들던 나는 결국 기타를 내 인생에 목표로 정하고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당시 유명기타리스트이셨던 선생님을 찾아갔다.


예상은 하고있었지만 고가의 수업료얘기를 듣고 고민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도움을 받으려했지만 생각보다 완강한 부모님에 반대에 레슨을 포기하고 동네에 있는 저렴한 학원에 등록해서 배우기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다시 목마름이 시작되고 결국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고 당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부족한 레슨비 부분을 일로 메꿀수있게 해주셨는데 그때 했던일들이 주로 전단지 나눠주기.밤에 풀통들고
주택가 벽면이나 전봇대에 전단지 붙히고 다니기등 고등학교 1.2학년 나이로 처음에는 창피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배울수있다는 일념과 목적으로 이겨낼수있었다.
 

결국 일년이상 아들의 이런모습을 지켜보시던 부모님들도 전공을 허락하시고 고가의 악기도 사주시고 레슨비도 지원해주시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창피함과 수치심을 겪어가며 배우고자 애썼던 그 열정이 지금의 나를 사랑받는 기타리스트로 만들어준게 아닌가한다.

 

두번째 만남은 바로 스페인


1991년 20살의 나이로 유학을 결심하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당시 기타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던 스페인유학.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이라는 큰꿈을 들고 낡은 기타케이스메고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 꿈은 바로 현실이라는 큰벽앞에 고배라는 쓴잔을 마시게하고. 꿈같을거 같던 유학생활은 사실 너무나힘들었다.


아는사람도 없고 언어도 잘안통하는데 생각보다 처리해야할 행정적인 절차가 꽤나 많고 어려웠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러 선배님들 교민분들께서 도와주셔서 무사히 잘해결할수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유학생활.마드리드 아르뚜로 소리아 음악원 시험봐서 기타 2학년 화성학등 음악이론 3학년.
(여기 학제가 6학년 졸업이 학사.8학년 졸업이 석사다)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여기 시스템이 전공악기는 음악이론보다 무조건 한학년 밑이어야하기때문에 받아들이고 입학하여 이론수업에 중점을두고 공부하며 다음해 마드리드 시립음악원  시험에서는 기초이론면제 기타 5학년에 입학이 허가되었다.

 

이후 삼년에 걸쳐 시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왕립음악원 진학과 군입대를 고민하다 결국 귀국하여 입대하고 재대후에 다시 스페인으로 가서 왕립음악원 입사를 준비하는데 아마도 이때가 가장 치열하고 힘든시기아니었나싶다..
 

사실 대부분 유학생들은 졸업시험이 힘들겠지만 26개월을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재대한 나에게는 입학자체가 큰벽처럼 느낄수밖에 없었다.스페인 최고의 음악학교 이곳의입시는 클래식기타의경우 매년 약 15명 내외의 학생을 뽑는데 스페인각지에서 또 한국 일본 중국 중남미등 전세계에서 유학생들이 시험보러오고 여기에 외국인 쿼터제까지..제대후 입시까지 준비할수있는시간은 일년정도 다행히 시립음악원 교수께서 왕립음악원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고 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되는분을 소개해주셔서 지도를 받을수있엇다..


이때부터 나는 시간에 있어서만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 되가고 있었다.다른건몰라도 내시간만큼은 정말 소중하게여기고 그런만큼 남에 시간도 존중해주고..하지만 3년이라는 군대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입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는 마음에 거의 하루종일 연습만하던중 손에 무리가오고 시험이 한달도 안남은 상황에서 손가락이 붇기시작하고 관절에 무리가와서 염증이생겨서 기타치지말라는데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수도 없고 침을맞으러 다니고 뜸을놓기시작했는데 문제는 뜸을 손가락에 뜨는데 화상을입어서 진무르고 피가나고.그래도 다행이 시험전까지 상태가 호전되서 무사히 시험을치를수있었다.


결국 14명 뽑는데 13번재로 합격하고 로드리고선생님의 정식학생이되어 공부하기시작했다..이때 이학교에는 여섯분의 기타교수가 계셨는데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로드리고교수가 음악적인면에서는 바예스테로스교수가 유명하셔서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좋으셨는데  나는 결국 이두분 모두에게 사사받을수잇는 행운을 누리기도했다..

 

세번재 만남은 핑거스타일기타.


2003년 귀국후 수회의 독주회와 무수한 공연 다양한 레코딩작업 여러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이런 작업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기타리스트로서 행복하고 만족한삶을 살아오던중 2010년 크리스마스날 내생에 가장크고 귀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내가 가장사랑하는 딸 라희가 세상에 태어났다..이때부터 내머리속에는 어떻게해야 내가 훌륭한아빠가 될수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되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자 라고 결심하게되는데 그게 바로 핑거스타일기타다.(핑거스타일 기타란 예전 주로 팝이나 가요반주로만 쓰이던 어쿠스틱기타(통기타)를 완전한 독립연주형태로 연주하는것을 말합니다


얼핏생각하면 클래식기타와 같을수 있지만 핑거스타일만의 독특한 오른손주법과 왼손을 이용한 터치에서 큰 차이점이있습니다) 결심후 바로 낙원상가에가서 어쿠스틱기타를 하나 구입하고 교본도 하나 구입해서 서초동 연습실로가서 좀 연습해보는데 아 이건 혼자할수있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선생님을 수소문해보는데 문제는 이분야가 아직 정착이 안되어있어서 정식으로 공부하신분들이 안계시는거였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후에 몇군데 학원을 선택해서 등록해보고 레슨을 받아보니 상당히 실망스러워서 학생들을 통해서 연주활동을 하고있는 젊은 기타리스트를 소개받았다.


레슨을 받아보니 참 성실히 가르쳐주시는 느낌을받고 제자로입문하였다.이때부터 새로운 장르 핑거스타일기타의 세계에 빠져들게된다.


양손으로 기타를 두드리기도하고 여태껏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주법들을 새로 배우며 참행복했던거같다..
그러면서 내공연에 핑거스타일 음악이 레파투아로 한두곡씩 추가되기시작하고 공연때면 항상 두대의 기타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엿다.


관객들도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어쿠스틱기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큰힘이되었던것같다..


그러면서 13년4월에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 과감하게 2부공연을 핑거스타일 곡으로만 구성하고 몇몇곡은 현악4중주로 편곡해서 새로운 시도로 좋은반응을 얻기도하였다.


거기다가 14년에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코타로 오시오의 대표곡인 황혼과 윈드송을 협연하였는데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처음시도된일일것이다..


2011년 2월부터 시작된 레슨은 아쉽게도 2년후인 13년도 2월에 끝내야만했다..


사실 그 몇개월전부터 더이상 못가르치겟다고 계속 그만 하자고 하시는걸 억지로 배우고싶다고 다녔는데 마지막레슨날에는 너무나 간곡히 부탁하셔서 받아들일수밖에 없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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