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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노동일 공동의장 (전 경북대 총장)“2.2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역사적·시대적 요청”
이재복 기자  |  lk97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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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14  00: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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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盧東一)공동의장 (전 경북대총장)

3·15마산의거와 4·19민주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하면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는 2·28민주운동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2·28민주운동은 지난 1960년 2월 28일 당시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해 경북고, 사대부고, 대구고 등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의거다. 대구시와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는 2·28 민주화 운동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본지는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노동일 공동의장을 만나 대한민국 민주운동의 횃불인 2·28민주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추진하게 된 배경과 2·28 민주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2·28은 1960년 4월 시민혁명이라는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만든 큰 울림”

- 2 · 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설립 취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던 2.28민주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1990년 2월 발족되었으며 2000년 11월 29일 오늘의 「사단법인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로 법인화 되었습니다.

- 국가기념일 지정 추진선언문에서도 2.28의 의미를 재차 강조하셨는데?

▲ 1960년 늦겨울 이 땅에 민주주의의 여명을 알리는 한줄기 함성이 있었습니다. 2.28민주운동이라 불리게 된 이 날의 의거는 4월 시민혁명이라는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만든 큰 울림이었습니다. 2.28은 이승만 정권의 불의에 항거한 대구의 고등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많은 시민들과 언론이 참여와 지지를 보내면서 시민저항 운동으로 타올랐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이 그 의미를 기억해야 할 역사적 쾌거입니다. 때문에 2.28민주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역사적, 시대적 소명이고, 대한민국 미래를 향한 위대한 발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시대적 열망을 모아 국가기념일 지정 추진을 선언했습니다.

- 2 · 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를 더욱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사업들을 진행 중이십니까.

▲ 현재 우리 기념사업회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2.28민주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사업입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의 여명을 알린 2.2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역사적·시대적 요청입니다. 국가기념일 지정 추진 사업 이외에도 아카이브 구축사업, 민주시민정신확산사업, 고등학생 마라톤 대회, 음악회, 사진전, 민주시민아카데미 등 다양한 사업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10대 공동의장을 맡게 된 계기와 2 · 28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 우리나라는 빠른 시일 내에 경제 발전과 더불어 민주주의 발전도 이룬 나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습니다. 특히 의식적, 문화적 차원에서는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선진화를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힘을 모으기 위해서 이 자리를 맡았습니다.

- 최근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의장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그렇습니다. 제도적·정치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는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대립과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벽은 지역간·이념간·계층간·세대간의 갈등과 대립입니다. 이래서는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 의장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진정한 민주주의의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 민주주의는 독재, 독선, 독점에 반대합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정신의 핵심입니다. 상생과 공영의 길로 가야합니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에서 특히 지식정보화시대에는 상생과 공영없는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불가능합니다.

- 우리 사회가 이념논쟁 등으로 대립과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상생과 공영을 위해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신다면.

▲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독선적인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정치인은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람들입니다. 플라톤은 대화를 진리를 찾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나라가 가야할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대화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 끝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 민주주의 여명을 알렸던 2·28은 대구경북민만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 아닙니다. 2·28은 1960년 4월 시민혁명이라는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만든 큰 울림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적 자랑이기도 합니다. 2.28민주운동의 국가기념일 지정 추진에 특별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권영진 대구시장, 윤장현 광주시장과 서명하는 노동일 공동의장

<box> 노동일(盧東一)공동의장은?

노동일 공동 의장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신분으로 노동 운동에 참여하였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경북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특히 노 공동의장은 본지 오경섭  발행인이 KBS 기자로 근무하면서 박사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기도 했다. 노동일 의장은 지난 4.13총선 직전 새누리당의 새누리당이 지역 인재 영입에 미온적이라며 "대구·경북지역 등 전국의 각 지역에서 직업을 갖고 사회활동을 해온 각계 전문가와 활동가들을 영입해야 정치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노 의장은 경북대 총장 임기를 마치면서 “경북대는 정말 저평가된 우량주”라며 “경북대는 바닥에서 다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U턴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임기 동안 재도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만큼 이제 구성원들이 발전에 대한 '의지'로 뭉친다면 경북대의 목표인 세계 100위권 대학 진입도 가능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노 의장의 총장 재임 4년은 경북대 대변화의 시기였다. 지루하게 논의만 했던 상주대와의 통합을 이끌어 냈고 칠곡 메디컬 센터 건립, 법학전문 대학원 및 약학대학 유치, 교육역량강화 사업 2년 연속 전국 1위 등 굵직한 외형적 성과를 일구어냈다. 500병상으로 시작했지만 1천200 병상까지 확대된 칠곡 메디컬 센터도 대구가 지향하는 메디시티의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북대 교수들의 연구 역량이 각종 평가에서 5~7위권으로 올라섰고, 캠퍼스 국제화를 위해 해외 30여 개 대학과 교류 결연을 하였고 연간 2천500명의 재학생들이 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등 경북대 국제화 프로그램은 외교통상부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수준이 높은데, 모두 노 의장의 총장 재임시 업적이었다.

<프로필>

1967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197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1978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석사

1979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89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박사수료

1993년 8.12 보궐선거 민주자유당 대구 동구 을 국회의원 출마 낙선

2006년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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