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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분쟁과 IS테러의 원인은 무엇인가?
엄규리 기자  |  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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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25  0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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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아시아 남서부와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을 포괄하여 부르는 말이며 중동 분쟁은 그 지역에서 발생하는 국가 간, 민족 간, 종교 간의 충돌을 의미하는 말이다. 중동 분쟁은 우리에게 다소 멀게 느껴진다. 대륙 반대편에 있는 중동은 사막과 석유의 땅으로 기억될 뿐 그 안의 문화와 종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상반되어있어 그리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하여  중동 분쟁을 다른 나라 이야기라 무시할 수는 없다. 

중동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두보이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신흥 시장이기도 하다. 특히 중동의 사소한 분쟁에 석유가격이 급속도로 변동하는 모습을 보면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중동의 분쟁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눈에 중동은, 이들 국가에서 종교로 삼는 이슬람은 어떤 모습일까. 무슬림 간 종파(宗派) 다툼이 벌어지는 곳,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오랜 분쟁이 벌어지는 곳, 국제사회에서 부상한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의 소굴…. 중동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부분들이다.이들에 대한 편견은 IS의 테러가 발생할 때 확고해진다. 지난해 11월 IS의 프랑스 파리테러사건 직후의 한국이 그랬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내 이슬람교 본산(本山)인 서울중앙성원에서 만난 이행래 원로 이맘(이슬람 성직자)은 “IS는 무슬림이 아닌 범죄 집단”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무슬림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13만5000여 명의 이슬람 신자가 있다고 추산하는 우리 입장에서 이슬람 그리고 중동에 대해 깊이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분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200년이 흐른 후 시효만기를 무시하고 중동에 국가를 세운 이스라엘과 뒤를 봐주는 미국, 그리고 이해관계가 얽힌 서구 국가들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 이란과 이스라엘의 핵 개발에 따른 안보 위협 증가 등으로 가뜩이나 불안정했던 이곳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서구 국가들의 직간접적 개입으로 인해 ‘아랍의 봄’ 이후 군부정권이 무너진 국가들의 혼란이 야기돼 분쟁이 극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해결의 실마리 또한 중동 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지목하기보다 이들로부터 찾아야 하는 이유다. 
“종파적 분리가 중동에서 벌어지는 분쟁들의 주된 원인이라고 사고하는 틀을 빨리 벗어던질수록 우리는 이 지역에서 정말로 분쟁을 이끌어내는 것은 무엇이며 거기서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이후 가장 많은 무력 분쟁이 일어난 곳이 중동지역이다. 20세기 초 중동지역에 많은 석유매장량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중동지역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었으며 국제유가가 앙등됨에 따라 중동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한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지금도 중동에서의 분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중동지역의 분쟁을 이해하려면 그 분쟁의 근원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동분쟁의 근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동 분쟁은 중동지역 사람들 절대다수의 종교인 이스람교의 교리와 관련이 있다. 이스람교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대교,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나 유대교가 유대 민족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주장을 배격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3위1체설을 부정하고 무하마드가 예수 다음의 마지막 예언자임을 주장한다. 이스람교의 경전인 쿠란에서는 이스람교를 믿지 않은 자들을 올바른 길을 벗어나 방황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구약성서에서는 그들의 신인 여호와를 믿지 않는 자들을 올바른 길을 벗어난 자들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교리 상의 근본적인 차이로 인하여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십자군 전쟁이 치러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유대민족들이 연합국의 도움을 받아 2000년 전에 떠났던 팔레스타인 땅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들의 국가를 새로 건립하자 이 지역에 살던 300만명의 팔레스타인 민족이 그 지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때로부터 유대민족과 이스람교도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1948년부터 1973년 까지 네 차례에 걸친 중동 전쟁, 1958년부터 레바논에서 이스람교도와 기독교도간의 발생한 내란에 미국, 이스라엘, 시리아가 관여하는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영토와 평화를 교환하는 오슬로 협정이 합의되었고 2003년에는 미국이 개입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중동평화로드맵이 작성되었으나 이러한 합의가 모두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이유는 종교교리의 상이함으로 인하여 양자 간의 공존이 어렵다는 점에 있다.
 
둘째로는 이스람교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여 종교지도자가 쉽게 정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의 메카와 리아드에서 활동한 무하마드의 사후 그의 후계자들은 칼리프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알라의 가르침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하여 8세기까지 팔레스타인, 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 이베리아 반도, 인도, 인도네시아까지 이스람권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스람교의 통치 지배권은 다마스커스, 바그다드, 카이로를 거친 후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터키인들이 이스람의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그 지배자의 호칭을 술탄으로 바꾸었는데 이들의 통치는 종교와 정치를 함께 관장하는 정교일치의 신정정치이었다. 이스람권의 신정정치의 전통은 1979년 이란에서 민중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붕괴되자 호메이니라는 종교지도자가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란의 종교세력이 정치세력화하는 것에 대하여 위협을 느껴 1980년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켜 이 전쟁이 1988년까지 계속되었다. 

정교일치의 전통을 가진 이스람 세계에서 종교가 정치세력화 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힘으로서 군사세력이 쉽게 정치 세력화하여 군사지도자가 종교 지도자에 대체하여 정권을 잡는 경향이 나타난다. 2011년 이집트의 민중혁명으로 군인 정치가이었던 무바라크가 물러나자 임시 군사정부가 들어선 후 정권이 무르시 민선 대통령에게 이양되자 이스람교 종파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으며 2014년에 정권이 다시 군사 지도자에게 복귀되었음은 이러한 성향을 반영한다. 

이스람 교도들은 무하마드의 사후 칼리프의 자격에 관하여 무하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만이 칼리프가 될 수 있다는 시아파와 무하마드의 혈통이 아닌 자도 칼리프로 선출될 수 있다는 순니파로 나누어 져 양파 간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대립이 격화되어 온 주된 이유 또한 종교지도자의 분파 대립이 바로 정치권력의 대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중동 이스람교도들이 과거의 영광에 대한 자긍심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강대국으로부터 받은 피해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람 문화권은 7, 8세기 경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신학과 법학, 과학을 발전시키고 그리스, 로마 문화를 보존하여 이를 서구의 근세문화로 승계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 이스람 세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터키인들은 11세기에는 셀주크 족 터키인들이 천산산맥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대 제국을 건설하고 200년 동안 기독교도들이 조직한 십자군에 맞서 우세한 싸움을 하였으며 셀주크 터키를 멸망시키고 건국된 오트만족 터키는 15세기 중엽 동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대 제국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오트만 제국은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 측에 가담하였다가 패하게 되자 발칸반도에서 여러 나라가 독립하였으며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시리아 지방은 영국의 보호국 또는 위임통치 지역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강대국들은 이 지역의 국가들의 독립과 관련한 협상을 하여 이 지역의 국가들이 1920년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까지 독립하게 되었는데 이 때 강대국들은 자국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국경선을 확정하여 새로운 국가들을 탄생시킴으로써 이들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소지를 남기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살아왔던 약 2천5백만 명이나 되는 쿠르드 족은 그들의 독립 국가를 가지지 못한 채 이란ㆍ이라크ㆍ터키ㆍ시리아ㆍ구소련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되어 쿠르드 족이 거주하는 국가들의 불안 요소가 되고 있으며 이라크가 1990년 쿠웨이트를 공격하면서 쿠웨이트가 원래 이라크 영토이었다고 주장한 것은 그들 영토 경계선 획정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행위이었다, 

오늘날 이스람 극단주의자들의 과격한 테러행위는 그들의 과거의 영광과 오늘날 현실의 격차에서 오는 좌절감과 분노의 표출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알카에다 조직이 미국을 상대로 2001년 9.11 대규모 테러행위를 자행한 것은 미국의 대 중동 정책에 대한 이스람교도들의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2003년 미국이 주도하여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한다는 근거로 이라크를 무력 침공한데 대하여 이스람 국가들은 오늘날에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에서 약 4조 달러를 쓰고도 이라크의 재건에 성공하지 못한 근본 이유도 이라크인들의 이러한 정서와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중동 분쟁을 해결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중동 지역의 석유자원을 위요하고 주요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상이함에 따라 중동 분쟁의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2011년부터 시작되어 15만 명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해결방안을 두고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현재 중동 국가 간 분쟁의 근원인 수니파-시아파 갈등은 약 1천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32년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면서부터다. 이때 무함마드의 혈육을 후계자로 해야 한다는 시아파, 공동체 합의를 통해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수니파로 의견이 갈렸다. 무함마드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시아파는 무함마드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Ali) 이븐 아비 탈립(이하 알리)을 초대 칼리프(Caliph, 후계자)로 추대했다. 하지만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丈人인 아부 바크르를 추대했다. 

시아(Shi'a)는 시아트 알리(shī‘at Alī)의 준말로서 ‘알리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수니는 무슬림 공동체(움마)의 ‘순나’(관행)를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결국 수니파 의견이 채택돼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가 됐다. 이후 시아파는 공동체 내의 큰 불만 세력이 됐다. 일단 초기에는 회의에서 뽑힌 칼리프가 무함마드의 뒤를 이었다. 아부 바크르-오마르-오스만-알리 등 선출된 4명의 칼리프가 다스린 시대를 ‘정통 칼리프 시대’(632~661년)라고 부른다. 하지만 무함마드가 남긴 유일한 혈육으로 4대 칼리프에 올랐던 알리가 곧바로 암살되면서 갈등이 노골화됐다. 그 뒤 알리의 장남 하산마저 수니파 꾐에 넘어간 그의 아내에게 독살당하고, 차남 후세인도 수니파와 치른 전투에서 숨지면서 두 종파는 원수가 됐다. 이렇게 시작된 1400년 전의 원한은 지금도 악순환을 계속 하고 있다. 

2011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 정권(알아사드) 대 수니파 반군, 2015년 터진 예멘 내전은 수니파 정권 대 시아파 반군의 대결 구도다. 종파 전쟁 성격이 강한 내전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분쟁을 확산시킨다. 최근에는 이란 핵협상 과정에서 사우디가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극단주의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에서도 이런 종파갈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이슬람 신자는 수니파가 85%로 다수, 시아파가 15%로 소수이다. 국가별로 수니파는 사우디와 시리아·이집트·예멘·레바논·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대부분 이슬람국가를 차지하고 있고 이란, 이라크, 바레인 등은 시아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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